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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픽

20세기 초의 미술계 동향, 야수파의 등장, 앙리 마티스 등

by 호외요!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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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는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공산주의의 부상을 포함한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많은 예술가들이 정치적, 사회적 논평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사용하면서 예술의 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산업의 발전과 기술의 발달 또한 진일보하였고 특히 사진과 영화 등에서 상당한 발전을 보이며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격변의 시기에 예술계 전반의 동향과 새롭게 등장한 미술사조인 야수파에 대해 알아보겠다

 

20세기 초의 미술계 동향, 야수파의 등장

     

    20세기초 미술계의 동향


    모더니즘의 등장으로 전통적인 예술 형태를 거부하고 대신 새로운 기술과 재료를 수용하며 예술가들은 추상적인 형태, 밝은 색, 그리고 전통적이지 않은 재료들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또한 야수파, 표현주의, 입체파와 같은 몇몇 전위적인 운동이 출현했다. 이 아방가르드의 물결은 전통 예술의 경계를 넓히고 현대 세계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세계 여러 지역 간의 문화 교류가 증가하며 다른 문화적 전통과 영향을 끌어낸 새로운 예술 양식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전반적으로 예술가들이 전통적인 형태의 경계를 밀고 새로운 기술, 재료, 그리고 문화적인 영향을 수용하면서 예술 세계에서 거대한 변화와 실험의 시기였다.

     

    1905년 살롱 도톤느에 대한 기사
    1905년 파리의 살롱 도톤느에 대한 기사

    Not identified, anonymou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야수파 (fauvism)의 등장


    야수파는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나타나 오랜 기간 이어지진 않았지만 영향력 있는 예술 운동이었다.

    그것은 밝고 대담한 색단순화된 형태의 사용과, 표현적이고 감정적인 붓놀림을 선호하는 전통적인 표현 기법을 거부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fauvism'이라는 이름은 야생 동물'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fauve'에서 유래했고, 이 용어는 원래 비평가가 1905년 파리에서 함께 전시한 젊은 예술가 그룹의 작품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 예술가들은 앙리 마티스, 앙드레 드랭, 모리스 드 블라맹크, 그리고 키스 반 동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야수파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강조한 그 시대의 보수적인 학문 예술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야수파 예술가들은 그들 자신을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색과 형태를 실험하기 위해 노력했다.

    야수파 그림은 풍경화, 정물화, 그리고 초상화를 특징으로 하지만, 이러한 주제들은 전형적으로 단순화되고 양식화되었다. 예술가들은 주제의 현실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보다 그들의 작품의 감정적인 영향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야수파는 현대 예술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고, 색과 표현에 대한 그것의 강조는 표현주의추상적 표현주의와 같은 후기 운동을 위한 길을 열었다.

    야수파의 밝은 녹색, 파란색, 분홍색, 그리고 노란색과 같이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강하고 충만한 색의 사용은 예술에서 색 이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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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수파의 주요 특징 


    굵고 밝은 색상

    야수파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에서 강렬함과 감정을 만들기 위해 강하고 충만한 색을 사용했다.

    단순화된 양식
    야수파화가들은 움직임과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두꺼운 붓질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제를 기본적인 모양과 형태로 단순화했다.

    감정 표현
    주제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을 만드는 것에 덜 관심이 있었고 감정과 느낌을 전달하는 데 더 집중했다.

    자연스럽지 않은 색상
    밝은 녹색, 파란색, 분홍색, 그리고 노란색과 같이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 색을 자주 사용했다.

    앙리 마티스 사진
    앙리 마티스 1913, 사진 Alvin Langdon Coburn

    Alvin Langdon Coburn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야수파의 주요 작가와 활동, 의의

     

    1905년 가을, 파리에서는 보수적인 <살롱> 전과는 성격을 달리하는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가 3회째를 맞이해 개최되고 있었다.

    진보적인 성향의 전시회로는 이미 1884년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와 폴 시냐크(Paul Signac), 오딜롱 르동(Odilon Redon) 등이 창립한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이 있었지만, 무심사 제도로 인해 수준이 들쭉날쭉하다는 비난이 제기되었다.

    이에 심사위원을 두면서도 진보적인 작품들을 수용한 <살롱 도톤느>가 1903년에 창설되었고, 파리 화단은 더 없는 활기를 누리고 있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와 앙드레 드랭(André Derain), 모리스 드 블라맹크(Maurice de Blaminck) 등이 이 시기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고 후에 라울 뒤피(Raoul Dufy), 오돈 프리에즈(Othon Friesz),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등의 화가들이 야수파의 경향을 나타냈다.

    애초부터 목적의식을 갖고 체계적으로 결성된 그룹이 아니었던 관계로 야수파의 활동은 그다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야수주의는 독립적인 성격보다는 후기인상주의로부터 이어진 회화적 실험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1905년 <살롱 도톤느>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1907년까지 이어진 단체전은 3회 정도였고 1908년을 기점으로 그룹 내 주요 화가들은 각각의 관심과 특성을 세분화하게 된다.

    활동이 길지 않았지만 자연의 외형에서 벗어난 형태와 무엇보다 색채를 최우선적인 회화 요소로서 중시한 점, 그리고 블라맹크, 드랭, 특히 마티스의 아프리카 원시조각에 대한 관심 등은 이후 입체주의추상미술과 같은 현대미술로 이어지면서 명실공히 야수주의는 20세기 미술의 포문을 연 첫 번째 주요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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