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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픽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개요, 전개와 기법, 주요작가 1편

by 호외요! 202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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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시작된 초현실주의운동은 세계와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하면서 전통적인 사고와 예술적 표현 방식에 도전하고자 하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운동이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초현실주의자 대부분이 망명을 택해 그 활동이 사그라들었지만, 그 당시에나 지금까지도 예술의 각 분야에 끼쳤던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초현실주의의 개요와 활동 전개, 기법과 주요 작가들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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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의 개요, 전개와 기법, 주요작가

     

    초현실주의 (surrealism)의 개요


    1차 세계대전의 파괴적 영향에 대한 거부와 반향, 기존 질서와 예술에 대한 비합리적 비이성적 파괴를 통해 세계와 인간 경험을 새로운 방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는 1918년 기욤 아폴리네르의 희곡 < 티레시아스의 유방>의 부제였던 <초현실주의의 테마>에서 처음 언급되었지만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1924년 앙드레 브르통<초현실주의 선언>에서였다.

    "초현실주의. 남성명사. 순수한 심리적 자동기술(automatisme)로서, 이를 통해 말로든 글로든, 그 외 어떤 방식으로든, 사유의 실제 작용을 표현하는 것. 이성에 의한 모든 통제가 부재하는, 미학적이고 도덕적인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난, 사유의 받아쓰기." ... 초현실주의 선언(Manifeste du surréalisme) 중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새로운 형태의 의미와 이해를 드러내기 위해 전통적인 사고와 미학의 제약에서 벗어나 꿈의 세계, 무의식, 그리고 비이성적인 것을 탐구하려고 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인간 정신의 숨겨진 욕망, 두려움, 무의식의 세계, 그리고 갈등을 탐구하기위해 자유연상과 비전통적인 이미지와 상징성을 사용하였다.



    초현실주의의 전개, 활동 


    색채와 붓터치로 입체감과 원근법을 나타내는 새로운 기법을 선보였던 폴 세잔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는 새로운 공간개념으로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이던 1916년 전쟁과 기본 질서에 대한 거부, 파괴의 운동으로 시작된 다다이즘 또한 그 기본 정신과 콜라주 같은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초기의 초현실주의 운동은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문학운동으로 출발했다.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필립 수포 등이 <쉬르레알리슴 혁명>지(1924∼1929)를 통해 문학 운동을 펼쳤다.

    문학작품으로는 1920년대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 <문체론>, 엘뤼아르의 <고뇌의 수도>, 브르통의 <나자> 등이 발표되었고 1930년대 들어 J.위녜의 <쉬르레알리슴 소시선(小詩選)>, 브르통의 <새벽>, 엘뤼아르의 가장 초현실주의적인 시집 <민중의 장미>, 화가인 S.달리의 <비합리의 정복>이라는 편집광적 비판의 방법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


    문학뿐 아니라 미술에서도 초현실주의의 가능성은 예견되었다. 초현실주의선언에는 시인 피에르 르베디의 "이미지는 정신의 순수한 창조물이다……병치된 두 현실의 관계가 멀고도 정확할수록, 이미지는 보다 강력해질 것이며 정서적으로 더 강한 힘과 시적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는 말이 인용되었다.

    앙드레 브르통 또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만 레이(Man Ray), 앙드레 마송(Andre Masson), 장 아르프(Jean Arp), 후앙 미로(Joan Miro), 이브 탕기(Yves Tanguy) 등의 화가들을 지지했다.

    초현실주의 운동은 문학, 미술 등 예술의 분야에만 머물지 않고 윤리 종교 정치의 영역에서도 기성관념을 수정하려는 활발한 참여를 했으나 초현실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의 일치를 끌어내지 못하고 분열하게 되었다. 공산주의활동에 전향적인 루이 아라공폴 엘뤼아르가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결별하였다.

    앙드레 브르통
    앙드레 브르통, 사진: Henri Manuel, 1927

    Henri Manuel ,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초현실주의 전시회, 박람회

    -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 초현실주의 그룹전에 장 아르프, 막스 에른스트, 조르조 데 키리코, 앙드레 마송, 만 레이, 파블로 피카소 등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 1928년 파리의 미술관 '사크레 드 쁘렝땅'에서 초현실주의 존재합니까?, (Le Surrealisme, existe-t-il?)라는 제목으로 공동 전시회가 이어졌습니다. 참가자들 중에는 막스 에른스트, 앙드레 마송, 조안 미로, 프란시스 피카비아, 이브 탕기가 있었다

    - 1931년 미국 최초의 초현실주의 전시회가 코네티컷에서 열렸다.

    - 1936 파리의 '갤러리 찰스 래튼'에서 초현실주의 오브제 박람회(Exposition surrealiste d'objets)가 열렸다.

    - 1936 런던의 '뉴 벌링턴 갤러리'에서 국제 초현실주의 전시회(International Surrealist Exhibition)가 열렸다.

    - 1938년 파리의 갤러리 보자르에서  초현실주의 국제 전람회(Exposition Internationale du Surréalisme)는 앙드레 브르통폴 엘뤼아르가 조직하고, 마르셀 뒤샹이 전시 기획 및 중재자로, 살바도르 달리막스 에른스트가 기술고문, 맨 레이가 수석 조명 기술, 입구와 메인 홀 설계자에 볼프강 팔렌이 이름을 올렸다.

    이 전시회는 초현실주의운동의 정점으로 많은 화제와 또한 비평가들의 혹평 등 큰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초현실주의 기법들

     

    자동기술법 (오토마티슴, automatisme)

    <초현실주의 선언>에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이, 또는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견 없이 행하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듯이, 의식 하의 세계를 탐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라 볼 수 있다.

    즉 모든 습관적 기법이나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콜라주(collage)

    막스 에른스트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콜라주의 경우, 여전히 회화적 재현 체계 안에 머물러 있는 입체파 콜라주와는 달리, 전혀 다른 곳에서 가져온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병치시킴으로써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생경한 효과를 자아냈다. 그리고 그것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는 초현실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프로타주(frottage)

    동양의 탁본처럼 나무 ·돌 ·금속 등의 표면에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물감 등을 문질러 무늬를 얻고 이것을 계획적으로 화면에 맞추어서 효과를 얻는 방법이다. 에른스트의 <박물지(博物誌)> 등이 대표적이다.


    데페이즈망(dépaysement)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로 어떤 물건을 일상적인 환경에서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그 물건으로부터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물체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현출 시키는 기법이다.

    시인 로트레아몽의 ‘여신과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우연히 만난 것처럼 아름답다’라는 유명한 어구와,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데페이즈망의 개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초현실주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


    문학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미술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조로도 데 키리코, 후앙 미로, 레오노르 피니

    사진, 설치예술(레디메이드)
    만 레이, 마르셀 뒤샹

    주요 작가와 작품들은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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