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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픽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2편, 주요작가와 작품들

by 호외요!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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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1편에서는 20세기 초 시작된 초현실주의운동의 개요와 활동의 전개, 초현실주의  기법등을 살펴보았다.

전통적인 사고와 예술적 표현 방식에 도전하면서 세계와 인간 경험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했던, 초현실주의주요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알아보겠다.

살바도르 달리
살바도르 달리, 1965

Roger Higgins, World Telegram staff photographe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초현실주의(쉬르리얼리즘) 2편, 주요 작가와 작품들


    초현실주의 작가들, 문학


    앙드레 브르통 (André Breton)

    1896~1966, 프랑스 출생.

    14세 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보들레르, 말라르메, 위스망 등의 시에 몰두했고 폴 발레리와도 교류했다. 의과대학생시절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프로이트의 저서를 탐독했다. 프로이트를 통해 받은 영감과 사유는, 후에 초현실주의 선언의 이론 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1916년 시작된 다다이즘 운동에도 참여했고,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필립 수포 등과 오토마티즘(automatisme, 자동기술법)에 몰두하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했다.

    문학과 미술등 예술뿐 아니라 윤리, 종교, 정치의 영역에도 활발한 참여를 했던 초현실주의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였으나 궤를 달리하는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등과 결별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

    <자장>, 1921 <초현실주의 선언>, 1924

    <쉬르레알리슴 혁명>지, 1924∼1929
    <나자 Nadja>, 1928
    <초현실주의 제2선언>, 1930

    <연통관 Les Vases communicants>, 1932

    < 미친사랑>, 1937 <들판의 열쇠>, 1953
    '불복종 권리'를 다룬 <121인의 선언>에 서명

     

    루이 아라공 (Louis Aragon)

    1897~1982, 프랑스 출생.

    앙드레 브르통, 필립 수포 등과 함께 <문학, Littérature>을 창간하여 다다이즘 운동에 참가하였고, 1924년에는 앙드레 브르통과 <초현실주의 선언>에 참여하였다.

    이후 공산주의에 접근하며 초현실주의 그룹과 결별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로베르 데스노스, 폴 엘뤼아르등과 함께 문학활동을 통한 레지스탕스 활동을 전개하며 나치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주요 작품

    소설 <파리의 농부 Le Paysan de Paris>, 1926
    <도전당한 회화 La Peinture au Defi>, 1930
    <프랑스의 기상나팔 La Diane française>, 1945

    <레 코뮈니스트 Les Communistes>, 1949∼1951
    <성주간 La Semaine Sainte>, 1958

     

    폴 엘뤼아르(Paul Éluard)

    1895~1952, 프랑스 출생.

    앙드레 브르통, 루이 아라공, 필립 수포 등과 함께 다다이즘 운동에 참가하였고, 1924년에는 <초현실주의 선언>에 참여하며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는 실천적 모토로 투명하고 서정적인 시로 후대 시인에 큰 영향을 미치며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시를 만들어냈다.

    주요 작품

    <고통의 도시 Capitale de la douleur>, 1926
    <시와 진실 Poésie et Vérité>, 1942
    <독일군의 주둔지에서 Au rendez-vous allemand>, 1944
    <교훈 Une leçon morale>, 1949 <불사조 Le Phénix>,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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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현실주의 작가들, 미술


    이브 탕기 (Yves Tanguy)

    1900~1955, 프랑스출생으로 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상선 선원으로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고,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을 보고 화가의 결심을 굳혔다.

    앙드레 브르통이 이끄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들어가 철저하게 무의식의 영역을 세심한 붓질로 묘사한 그는 포현실주의의 유력화가로 주목받았다. 2처세계대전 발발 후 미국으로 건너가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미국 전위 애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현실주의의 기법인 자동기술법에 의거 그림을 그렸고 가장 초현실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화가였다.  

    주요 작품

    <폭풍우: 검은 풍경 The Storm: Black Landscape>, 1926
    <부상당한 엄마, 아빠 Mama, Papa Is Wounded>, 1927
    <밖 Outside>, 1929  <대지와 대기 The Earth and the Air>, 1941
    <시간의 신기루 The Mirage of Time>, 1954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스페인 출생

    어린 시절부터 고집불통에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는 금기된 것들에 도전하며 미술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그의 청소년기에 시작되었던 다다이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28년 파리로 옮겨온 후 피카소를 만나 영향을 받기도 했고,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과 교류하며 활발한 작품활동 속에 1929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초현실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달리는 ‘편집광적, 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기법을 통해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접근을 통해,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달리의 뛰어난 그림들은 초현실주의의 대표화가로 칭송받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사회 부적응의 여러 기행적인 모습과 스스로 자신의 천재성을 칭송하는 독불장군식의 태도는, 결국 초현실주의 그룹과 마찰을 일으키며 브르통에 의해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을 당하기도 했다.

    1936년 발발한 스페인 내전에서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헤밍웨이, 파블로 네루다 등 세계의 지식인들이 프랑코 반군에 맞선 공화주의를 지지했지만, 공화주의의 편에 서지 않은 달리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후에 프랑코 독재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달리는 히틀러를 찬양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한 후에도 "나는 초현실주의 자체니까 아무도 나를 쫓아내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개인적인 신념을 표출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공개적인 자랑, 거만한 태도와 자아도취의 모습,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많은 언사와 기행 등에 많은 논란과 비난, 비평이 뒤따랐지만, 그의 예술이 번뜩이고 뛰어난 작품성과 화제성으로 전 세계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요 작품

    <안달루시아의 개>, 1929
    <황금시대>, 1931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삶은 콩을 이용한 부드러운 구조 Soft Construction with Boiled Beans>, 1936
    <나르시스의 변태 Metamorphosis of Narcissus>, 1937
    <참치 잡이>, 1966~1967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1891~1976, 독일 출생 후에 프랑스로 귀화.

    독일의 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던 그는 1차 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전쟁을 겪으며 세상의 부조리함에 눈을 떴고 초기에는 피카소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영향을 받았다.

    제대 후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며 다다 운동에 참여하였고, 시인 폴 엘뤼아르와 그의 아내 갈라를 만나면서 세 사람은 동거(Ménage à trois)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갈라는 후에 살바도르 달리와 결혼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미국의 예술품 수집가 페기 구겐하임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등과 함께 추상적 표현주의 예술에 영향을 끼쳤다.

    콜라주(collage)와 더불어 프로타주(frottage), 그라타주(grattage), 데칼코마니(decalcomanie)등 다양한 기법으로 초현실주의의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관련된 로플로프(Loplop)라 불리는 새의 이미지를 작품에 자주 등장시켰다.

    1954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나 이 수상으로 상업주의에 굴복했다는 이유로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제명당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
    <셀레베스 The Elephant Celebes>, 1921
    <세명의 증인 앞에서 어린 예수를 체벌하는 마리아 The Virgin Chastising the Christ Child before Three Witnesses>, 1926
    <침묵의 눈 The Eye of Silence>, 1943~1944
    <프랑스의 정원 La jardin de la France>, 1962

    Nathan Hughes Hamilton,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1898~1967, 벨기에 출생.

    브뤼셀의 왕립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하였고 조르조 데 키리코와 윌리엄 드구브 드 누크의 영향을 받았다. 벽지공장의 드로잉맨을 하며 그림을 그리던 마그리트는 1927년 첫 개인전을 열었으나 비평가들의 혹평으로 전시회는 실패했다.

    파리로 이주해 앙드레 브르통과 교류하며 초현실주의 그룹에 참여하였으나 생계유지가 어려웠고, 1930년 다시 브뤼셀로 돌아와 광고일을 하다가 1936년 뉴욕 전시회와 1938년 런던 전시회를 거치며 본격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또한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에 둠으로써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 보이는 방향도 보여주었다. 그려진 대상과 실재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논리를 뒤집는 이미지의 반란과 배신, 상식에 대한 도전은 사물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들을 환기시킨다.

    마그리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 들어 상당히 높아졌고 그의 그림들은 팝 아트, 미니멀리스트, 개념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

    <연인들 The lovers>, 1928
    <이미지의 배신 The Treachery of Images>, 1929
    <골콩드 Golconde>, 1953
    <피레네 성 The Castle of the Pyrenees>, 1959
    <사람의 아들 The son of man>, 1964
    <빛의 제국 The Empire of Light>, 1948~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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