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에, 방탄소년단 뷔가 출연하여 서울의 명소를 소개한 유튜브 영상이 5억뷰를 넘어서는 주목을 받고있어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관광지의 인기는 더욱 높아 질 듯하다.
뷔가 소개한 서울의 관광 명소와, 외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서울 5대 궁궐의 간략한 역사에 대해서 알아본다.
방탄소년단 뷔가 출현한 서울 에디션 23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제작하고 방탄소년단 뷔가 출연하여 서울의 명소를 알리는 '서울에디션 23' 영상은 유튜브에서 3주 만에 5억 뷰 이상을 기록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에디션 23'은 서울의 뉴트로한 감성을 담은 1편 'New Tradition'과, 도심 속 자연을 주제로 한 2편 'Nature in the City'로 구성되어 서울의 곳곳 핫 플레이스를 소개하고 있다.
- 북촌 한옥마을
- 익선동
- 동묘시장
- 광화문
- 경동시장
-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 서울식물원
- 망원 한강지구
- 남산 백범공원
- 여의도 한강지구
방탄소년단 뷔의 '서울에디션 23', 1편 New Trandition
서울 5대 궁궐과 역사
* 법궁(法宮) : 임금이 공식적으로 활동하며 생활하던 궁. 정궁이라고도 한다.
* 행궁(行宮) : 임금의 궁궐 밖 행차, 휴양, 피난 등의 용도로 쓰이던 궁. 이궁(離宮)이라고도 한다.
* 별궁(別宮) : 임금이 사신을 접대하거나, 왕이나 왕세자가 가례 때 비나 빈을 맞아들이던 궁.
경복궁, 사적 117호, 1395년
태조(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를 하며 1395년 완공된 조선 시대에 가장 먼저 지은 궁궐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재정문제와 풍수지리가 좋지 못하다는 의견으로 270여 년간 공터로 남아있다가, 고종시대 1865~1868년 흥선대원군 주도로 재건되었다.
아관파천(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1년간 거처를 옮김)을 마치고 고종이 경복궁이 아닌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돌아감에 따라 경복궁은 궁궐로 사용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박물관, 조선총독부 미술관, 조선총독부청사 등이 들어서며 크게 훼손되었으며, 광복 후 국회의사당,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청사를 철거하며 경복궁 복원 사업이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창덕궁, 사적 122호, 1404~14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1997)
조선 2대 정종에 의해 개경으로 옮겨졌던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이전하기로 한 태종 이방원의 명으로 지어졌고, 한양으로 천도하며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었고 선조 말년인 1605년 중건을 시작해 광해군 즉위 후인 1609년에 마무리되었다. 인조반정을 거치며 다시 훼손되었다가 중건되었고, 이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재건될 때까지 조선시대 법궁(정궁)으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고종 퇴위 후 대한제국의 2대 황제이자 조선시대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겨 법궁이자 황궁의 역할을 했다.
창덕궁도 역사를 지나며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지만 궁궐들 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후원(비원)의 아름다움 또한 빼어나다.
창경궁, 사적 123호, 1483년
조선 9대 임금 성종이 정희왕후 윤 씨, 안순왕후 한 씨, 소혜왕후 한 씨를 모시기 위해 별궁이었던 수강궁 자리에 확장 건립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재건되었고, 이후 이괄의 난, 대화재 등을 겪으며 소실과 중건이 반복되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며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0년대 복원하여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경운궁(덕수궁), 사적 124호, 1611년
조선의 9대 임금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저택이었고 임진왜란 후 선조가 피난에서 돌아와 임시 거처로 사용하였다(정릉동 행궁). 광해군 때 행궁의 경내 범위를 넓히며 경운궁으로 이름 지었다.
인조 때 창덕궁으로 옮겨가며 경운궁 대부분의 전각과 대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을미사변 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이 돌아온 1897년 경운궁 확장공사가 이루어졌고, 대한제국 선포 후 대한제국의 황궁이 되었다.
1904년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1906년 축소된 규모로 중건되었다. 1907년 을사늑약 체결로 고종이 강제퇴위하고 순종이 황제 즉위 후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경운궁은 고종의 거처가 되었고 덕수궁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19년 고종 사망 후 토지가 매각되는 등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규모가 축소, 훼손되었고, 1933년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2010년 이후 덕수궁 복원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경희궁(경덕궁), 사적 271호, 1617~1620년
광해군에 의해 건립되었고 경덕궁으로 불리었다. 인조 때 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될 때까지 정궁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조선시대 양궐 체재하의 이궁으로 사용되었다.
1760년 영조가 경덕궁의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꾸었고 순조 때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중건되었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며 경희궁 전각 대부분을 해체하여 자재로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에 경희궁터로 경성중학교가 이전해 왔고 나머지 전각들도 모두 매각되어 건물들이 들어서며 경희궁의 전각들은 모두 사라졌다. 광복 후 경성중학교는 서울고등학교가 되었고 1980년대 서울고등학교가 강남으로 이전한 후 현대건설이 부지를 매입하여 사업을 시행하려 했으나 반대여론에 밀려 포기하고 서울시가 다시 매입하여 복원을 시작했다.
경희궁 옛터의 여러 곳에 새로운 건물이 신축되며 유적이 발굴되었지만 보존되지 않고 대부분 파손되었다.
서울에서 외국인이 많이 찾는 곳 참조
▶ 서울에서 외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 인기 여행지 10곳
▶ 서울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관광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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