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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픽

신조형주의와 데 스틸 운동, 몬드리안 리트벨트 등 주요작가

by 호외요! 2023.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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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 몬드리안을 중심으로 20세기초에 펼쳐졌던 <신조형주의><데 스틸> 운동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이 큰 예술이론, 예술운동 중 하나였다.

이후 추상적 표현주의, 미니멀리즘 등 20세기 조형이론뿐 아니라 회화, 건축,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큰 파급력을 행사한 신조형주의와 데 스틸 운동의 주요 작가와 작품들을 살펴보겠다.

이브_생_로랑_몬드리안풍_드레스
몬드리안의 디자인을 활용한 이브 생 로랑의 드레스, 1966

Eric Koch for Anefo, CC0, via Wikimedia Commons

 

신조형주의와 데 스틸 운동, 몬드리안 두스부르흐 리트벨트 등 주요작가  

     

    신조형주의의 개요와 <데 스틸> 운동


    1) 신조형주의의 개요

    20세기초 네덜란드에서 몬드리안 중심의 데스틸 운동에 의해 시작된 예술사조로, 미술작품에서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는 요소를 없애고 순수한 추상에 다가가야 함을 추구하는 미술사조로, 네오 플라스티시즘(Neo-plasticism)이라고도 한다.

    선과 면, 색의 배열을 통해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주의를 추구한 신조형주의는 수직선수평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 백색· 검정색· 회색의 무채색의 8가지를 기본 조형요소로 삼았다.

    빨강_파랑_노랑의_구성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몬드리안, 1930

    Piet Mondria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2) 데 스틸(De Stijl) 창간과 데스틸 운동

    De Stijl은 네덜란드어로 '스타일, 양식'이란 의미로 영어의'the style'에 해당된다.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테오 반 두스부르흐(Théo Van Doesburg)의 제안으로 1917년 미술잡지 <데 스틸(De Stijl)>을 창간하고, 뜻을 같이하는 시인 안토니 코크(Antonie Kok), 영화감독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화가 겸 조각가 조르쥬 반통 겔루(Georges Vantongerloo), 건축가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d) 등과 데 스틸 운동그룹을 결성했다.

    데 스틸은 창간동기에서 "이 작은 잡지는 새로운 미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또한 현대인 들로 하여금 조형미술의 새로운 국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 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데 스틸 운동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조형언어를 정복함으로써 세상을 비극적인 것으로부터, 그리고 특징적이고 개별적인 비전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삶을 단순화하기 위하여 시각을 단순화하려 했고, 현실로부터 자연적인 불순물과 우발적인 무질서를 제거함으로써 자연숭배와의 결별을 고하려 하였다.

    데 스틸운동은 미술뿐 아니라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조각, 건축, 디자인 등 각 분야에 걸쳐 신조형주의의 원리를 넓히려 했으며, 그 결과 산업 디자인, 상업미술 등 유럽 예술 전체의 동향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1924년 테오 반 두스부르흐(Théo Van Doesburg)가 수직선과 수평선에서 벗어나 대각선의 역동성을 주장하며 이로 인한 의견차이로 몬드리안이 <데 스틸> 그룹과 결별하였고, 1925년 이후 신조형주의도 동력을 잃고 잡지 <데 스틸>도 1932년 폐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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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조형주의의 주요 작가들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 네덜란드의 화가

     

    네덜란드의 풍경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몬드리안은,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모던 쿤스트링 전시회에 피카소와 브라크 가 출품했던 입체주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조형적 기법을 단순화시켜야 하며, 가시적인 것의 다양성을 몇 개의 기호로 축소 표현하여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 몬드리안은 파리로 이주하여 1912년~1914년까지 머물며 독립작가전(Salon de independants)에 출품하기도 했다.

    파리체류 시절 몬드리안은 형태를 단순화시키고 요약, 응축하며, 보편적인 것을 위해 개별적인 것을 희생시키고, 본질의 표현을 위해 장식적인 것을 희생시키는 노력을 보여 주었다.

    입체주의뿐만 아니라 에두아르 슈레, M.H.I 쉔메커 등의 저서를 애독하며 신지학에도 큰 영향을 받은 몬드리안은 예술을 '추상적 신성함'으로 구정했다.


    1917년 데 스틸 그룹을 결성하여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을 추구한 신조형주의를 전파했고, 1924년 대각선 사용문제로 테오 반 두스부르흐와 대립하며 데 스틸 그룹에서 탈퇴한 그는 1938년 런던을 거쳐 1940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에서 비밥스타일의 재즈 음악을 접한 몬드리안은 음악과 대도시의 역동성에 영향을 받아 '뉴욕시티' 연작을 선보이다가 1944년 폐렴으로 72세의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
    <붉은 나무 (The Red Tree)>, 1908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Composition 2 in Red, Blue, Yellow)>, 1930
    <뉴욕 시티 (New York City)>, 1942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Woogie)>, 1942~1943

    빅토리_부기우기_몬드리안
    빅초리 부기우기, 몬드리안, 1942~1944


    Piet Mondria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테오 반 두스부르흐(Théo Van Doesburg)

    1883~1931, 네덜란드의 화가, 시인, 건축가

     

    고흐의 영향으로 인상주의 회화로 첫 전시회를 가졌으나, 칸딘스키의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읽고 추상 미술로 전환하였으며 그 후 몬드리안의 작품을 접하고 회화의 이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1917년 몬드리안 등과 <데 스틸> 잡지를 창간하고 편집인을 맡으며 유럽 전역에 데 스틸 운동을 알리고 전파하는데 힘썼다.

    건축과 다다이즘에도 관심을 가지며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근처에서 구성주의, 다다이즘, 데 스틸에 관련된 교과과정을 열기도 했다.

    주요 작품
    <구성 (Composition)>, 1917
    <반 구성 (Counter-Composition)>, 1924

     

    반_구성_6
    반 구성 6, 테오 반 두스부르흐, 1925

    Theo van Doesburg,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게리트 리트벨트(Gerrit Rietveld)

    1888~1964, 네덜란드의 가구 디자이너, 건축가

    목공을 하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으려 일찍 학교를 떠나 일하다 1917년 자신의 가구 공방을 열었다.
    1911년경부터 건축을 배워 <데 스틸> 운동에 참여했다.

    현대가구의 상징이 된 <빨간색과 파란색 의자>는 처음에는 검정색이었다가 데 스틸 운동 참여 후 색깔이 입혀지게 되었다. 또한 데 스틸 운동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1924년 지어진 <리트벨트 슈뢰더 하우스>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주요 작품
    <빨간색과 파란색의 의자>, 1917
    <리트벨트 슈뢰더 하우스>, 1924
    <베니스 비엔날레 네덜란드관>, 1953

    빨간색_파란색_의자
    빨간색과 파란색의 의자, 리트벨트, 1917

    Daderot, CC0,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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