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사에 남아있는 놀라운 사건 사고,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한 사건 사고들이 있다.
1부에서는 유럽인구의 절반을 사라지게한 흑사병, 미국 역사의 비극 세일럼 마녀재판, 불가사의한 퉁구스카 사건, 의문의 힌텐부르크 사고와 로스웰 사건, 디아틀로프 사건에 대해 알아본다.
Sam Shere (1905–1982),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세계사의 놀라운 미스테리 사건 사고, 흑사병·세일럼 마녀재판·힌덴부르크·로스웰·퉁구스카·디아틀로프 사건 등
흑사병 (The Black Death, 페스트, 1346~1353)
1347년에서 1351년 사이에 발생한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 중 하나였다. 주로 쥐에게 서식하는 벼룩을 통해 전파되는 여시니아 페스티스균에 의해 발생했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이 질병은 무역로를 따라 확산되어 유럽에 도달하여 황폐화를 일으켰는데, 추정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7,500만~2억 명이 사망했으며, 14세기 유럽 인구의 30~60%가 사망했다.
증상으로는 발열, 림프절 부종, 조직괴사로 인한 피부 검게 변했다. 질병의 급속한 확산과 심각성은 광범위한 공황, 사회적 격변, 경제적 붕괴로 이어졌고 공동체 전체가 파괴되어 노동력 부족과 대대적인 경제 구조 조정이 이루어졌다.
흑사병은 오랫동안 영향을 미쳐 봉건주의의 쇠퇴를 가속화하고 종교적 열정과 박해(유대인을 역병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를 촉발했으며 유럽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또한 사회가 미래의 발병을 막기 위해 노력함에 따라 그 여파로 의학, 공중 보건 및 노동권의 발전을 촉진했다.
세일럼 마녀 재판 (The Salem Witch Trials, 1692)
미국 역사의 비극적이고 치욕적인 사건으로 세일럼 마녀 재판은 1692년 미국 신대륙 매사추세츠 세일럼 마을과 그 주변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1692년 2월, 엘리자베스 패리스와 애비게일 윌리엄스를 포함한 여러 어린 소녀들이 발작, 경련 등 기이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촉발되었는데, 의사는 질병의 증거를 찾지 못하고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한 발병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청교도 사회의 마을사람들은 평소 종교, 민족, 신분 등의 편견으로 배척받고 따돌림을 당하던 3명의 여성(사라 굿, 사라 오스본, 티투바)을 마녀로 지목했고 3명의 여성은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들이 투옥된 후에도 소녀들의 증상이 낫지않자 사람들의 의심과 편견은 광기와도 같이 번지며,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지목되고 기소되어 5월까지 100여 명이 감옥에 갇혔다.
마녀로 몰려 기소된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계층이었으며 재판부의 재판 절차는 공정하지 못했고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진행되었다.
나중에는 청교도 지도층의 부인들까지 마녀로 지목될 만큼 극심한 혼란이 오자 마녀 재판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결국 1693년 새로운 재판부가 구성되며 대부분이 무혐의로 풀려났고, 5월 총독은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포함 모두를 석방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마녀 재판이 진행된 1692년 5월부터 10월까지 모두 185명이 체포되었고, 59명이 재판에 회부되어 31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가운데 19명은 교수형을 당했고, 1명은 무거운 돌에 깔리는 고문을 당해 사망했다.
종교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이주하였던 이민자들 스스로가 뮤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게했던 '세일럼 마녀 재판'의 교훈은 집단 히스테리, 희생양, 시민 자유의 잠식의 위험에 대한 경고로 여전히 미국 역사에 뼈아프게 남아있다.
퉁구스카 사건 (Tunguska Event, 1908)
현대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사건 중 하나인 퉁구스카 사건은 1908년 6월 30일 러시아 퉁구스카 강 근처 외딴 시베리아 황야에서 펼쳐졌다.
목격자들은 눈이 부시도록 번쩍이는 빛에 이어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약 2,000 평방 킬로미터의 면적에 걸쳐 약 8,000만 그루의 나무가 납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폭발로 발생한 충격파는 유라시아 전역의 지진 계측기에 등록될 정도로 강력했고, 유럽까지 관측되는 대기 효과를 냈다.
퉁구스카 사건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치열한 과학적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다. 지배적인 이론은 지름이 약 50~60미터로 추정되는 돌이 많은 유성체나 혜성이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와 지상 수 킬로미터 위에서 폭발했다는 가설이다.
이 폭발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수백 배나 강력한 TNT 10~15메가톤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방출되었고,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장소에서 충돌 화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원들은 그 물체가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분해되고 기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년에 걸쳐 퉁구스카 사건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적 탐험이 수행되었고, 연구원들은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나무 잔해, 토양 표본 및 목격자 진술을 분석했다. 운석 가설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혜성이나 심지어 작은 블랙홀이 지구를 통과할 가능성을 포함한 대안적인 설명들도 제시되고 있다.
퉁구스카 사건은 과학자, 역사가, 음모 이론가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수많은 책, 다큐멘터리, 사변 이론에 영감을 주었고, 지구 근처의 물체들이 가져올 잠재적인 위험과 그것들이 지구에 미칠 수 있는 재앙적인 영향을 극명하게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고있다.
힌덴부르크 참사 (The Hindenburg Disaster, 1937)
독일의 상업용 여객 비행선 힌덴부르크가 1937년 5월 3일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해 5월 6일 미국 항공기지 레이크허스트에 착륙을 시도하다 공중에서 폭발했다.
제플린 항공사의 LZ 129 힌덴부르크(Luftschiff Zeppelin #129)는 독일의 대통령 힌덴부르크 원수의 이름을 따서 지은 비행선으로, 길이 245.3 m 직경 41.2m, 부피 200,000m3의 거대한 크기로 수소를 채워 운항했다.
이 사고로 탑승자 97명(승무원 61명, 승객 36명) 중 35명이 사망(승무원22명, 승객 13명) 하였고, 지상 승무원 1명을 포함 총 36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사고 원인으로 승무원에 의한 사보타주, 승객에 의한 테러, 정전기 스파크로 인한 폭발, 번개, 엔진 고장으로 인한 스파크 등 많은 가설이 나오지만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Murray Becker/Associated Press,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로즈웰 사건 (The Roswell Incident, 1947)
1947년 미국 뉴멕시코주 로즈웰 인근에 추락한 의문의 물체는 UFO와 정부의 은폐에 대한 수십 년간의 추측과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미국은 소련의 핵실험 탐지용으로 수천개의 감시용 풍선 기구를 띄우고 있었는데, 이 기구의 추락 사고 후 기상관측용 풍선이라고 발표를 했다. 하지만 1947년 6월 민간인 조종사 케네스 아놀드가 '날아다니는 원반(flying disk)'을 목격했다고 보고한 후, 이 플라잉 디스크에 대한 목격담은 전국에서 쇄도했다.
증거가 부족함에도 많은 UFO 지지자들이 로스웰에서 추락한 잔해를 외계인 우주선과 연관지었고 미국정부의 은폐를 주장하며 수많은 추측과 음모론이 대중 속으로 번져나갔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많은 거짓 정보와 해프닝이 발생했는데, 미국 아이다호주 트윈 폴스에서 30인치의 디스크가 발견되었다는 보고 후 FBI와 육군이 회수하여 조사하였지만 거짓으로 밝혀졌고, 1948년 뉴멕시코주 아즈텍에서 16구의 휴머노이드가 들어있는 미확인 비행체가 착륙 후 군에 의해 회수 되었다는 보고 또한 조작된 거짓말로 드러났다.
하지만 1978년 퇴역한 공군 장교 제시 마르셀이 로스웰 사건 당시 육군의 기상관측용 기구 발표와 달리 외계에서 온 잔해라는 주장을 내놓자 UFO 음모론은 점점 더 모순되고 복잡해져갔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나 외계인과 관련된 음모론, 목격담은 현재까지 끊임 없이 이어지며 수많은 영화, 저작물, 커뮤니티 등을 통해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The Dyatlov Pass Incident, 1959)
소련의 우랄 국립공과대학 스키 탐험대 10명(남자 8명, 여자 2명)은 우랄산맥을 거쳐 오토르텐산을 등반하고 베이스 캠프인 비자이 마을로 복귀하는 계획을 세웠다.
등반 당일이던 1월 28일, 1명이 열과 두통 등의 증상으로 베이스 캠프에 남았고 탐사대장 이고르 디아틀로프를 포함한 9명이 등반에 나섰다. 2월 1일 기상이 악화되자 캠프에 남았던 유리 유딘이 탐사대에 무전을 했고 탐사대장 디아틀로프는 홀라트샤흘산 능선에 야영지 설치 후 휴식 중이고 모두 무사하다는 답신을 보냈다.
하지만 2월 2일 탐사대와의 연락이 끊겼고 복귀 예정일인 2월 12일에도 탐사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구조대가 실종자 수색에 나서고 2월 26일 야영지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 5명의 시신을 수습했고, 5월 4일 악천후 등으로 연기되었다 재개된 수색에서 나머지 4명의 시신을 수습했다.
당시 소련 당국은 알수 없는 강제력에 의한 조난사고라고 발표했고, 2019년 재조사를 시작한 러시아는 2020년 눈사태에 의한 사고로 결론을 내렸다.
디아틀로프 패스 사건의 의문점
- 탐사대원이 머물던 텐트의 흔적은 외부의 침입이 아닌 내부에서 바깥쪽으로 찢겨진 상태였다.
- 저체온으로 사망한 5명의 시신은 속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은 상태였고,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 현장 주변 전나무가 불에 타 있었고, 시신의 피부는 주황색이었고 대원의 옷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 후에 발견된 4명의 시신은 물리적 충격에 의해 가슴 외상이나 두개골 외상, 눈과 혀가 없는 시신도 있었다.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 눈사태, 설인의 공격, 군사적 시험에 의한 피해, 방사능 무기 실험에 의한 피해 등 많은 가설이 등장했지만, 각 가설마다 해결되지 않는 모순과 증거 부족으로 명확한 원인 파악이 안되어 아직까지 미궁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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