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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와 시오니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과 분쟁의 역사 1

by 호외요! 2023.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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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갈등은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복잡하고 뿌리 깊은 역사의 분쟁이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다시 중동지역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영토, 정체성, 종교, 지정학의 문제를 포함하는 이러한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배경과 심리에 기인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살펴본다.

디아스포라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유대인들, 죄수들의 여행, 제임스 티소, 1896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역사, 디아스포라와 시오니즘

     

    팔레스타인(Palestine) 지역


    팔레스타인 지역이라 불리는 이 땅은 기원전 5000년 이전의 성곽 등 도시의 흔적이 나타나는 문명지로 기원전 1500년경에는 이집트가 지배했고 이집트의 지배가 약화되었던 기원전 13세기 경 히브리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고대 가나안 지역에 살았던 사마리아인, 유대인, 팔레스타인인들이 히브리인의 후손으로 여기고 있다.

    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가 이집트의 히브리인(야곱의 자손) 노예들을 이끌고 도착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바로 이곳 팔레스타인 지역이다. 이 지역은 수천 년에 걸쳐 서로 다른 제국들의 연속적인 통치와 서로 다른 민족들의 유입으로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이 존재했다.

    이렇듯 팔레스타인하면 현재의 팔레스타인 국가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역사, 문화, 지리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고 이스라엘은 '가나안(Canaan)'으로 표기한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와 귀환


    바빌론 유수와 디아스포라의 시작

    디아스포라의 어원과 개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의견이 있지만,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관습과 규범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집단을 말하며, 대표적으로 바빌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로 시작된 유대인의 이주를 말한다. (* 유수(幽囚): 잡아 가둠이란 뜻)

    기원전 6세기, 신 바빌로니아에 의한 고대 유다 왕국의 멸망 전후로 약 70년간 다수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떠나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에 억류되어 노예생활을 겪었다.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신바빌로니아가 멸망하며 유대인들의 억류에서 풀려났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돌아왔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은 현지에 남거나 소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남부 등으로 흩어져 정착하게 되었다.

     

    바르 코크바의 난

    서기 132년, 로마 제국의 통치하에 있던 유대인들은 계속되는 반란을 일으켰고, 3차 유대-로마 전쟁(바르 코크바의 난)에서 제압당한 후 대량 학살과 함께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거주를 금지당했다. 이에 많은 유대인이 지중해 전역으로 흩어지면서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폴란드 등 동유럽(아슈케나짐), 이베리아 반도(세파르딤), 중동 및 남아시아(미즈라힘) 등 곳곳으로 이어졌고 천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곳곳의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 정착을 이어나갔다. * 아슈케나짐, 세파르딤, 미즈라힘은 가 지역에 정착한 유대인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귀환의 시작

    동로마제국에서 이슬람 제국, 오스만 제국까지의 오랜 시간을 거치며 팔레스타인지역은 여러 문화의 혼합과 종교의 개종을 통해 서서히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으로 동화되어 갔고,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등 모든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성지가 되었다.

    16세기 무렵부터 오스만제국의 예루살렘에 대한 유화 정책으로 인해 유럽으로 이주해 있던 유대인들의 귀환이 갈릴리, 사페드, 가자, 헤브론 등의 지역으로 점차 증가하였다. 기존 팔레스타인 지역 정착민과 충돌이 있었지만, 유럽에서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계몽된 유대인들이 경제상황이 좋지 않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며 18세기말에는 약 30만 명의 유대인 인구가 형성되었다.

    기원전_8세기경_팔레스타인지역_지도
    기원전 8세기경 팔레스타인지역 지도

    Oldtidens_Israel_&_Judea.svg: FinnWikiNo derivative work: Richardprins,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시오니즘(Zionism)


    1880년대에 러시아에서 발생한 유대인들에 대한 포그롬(Pogrom, 구 러시아 제국 지역에서 일어난 반유대주의 학살과 폭동)은 유럽으로 번져갔고,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러시아를 떠나 미국, 캐나다, 영국, 팔레스타인 등으로 다시 이주하였다.

    19세기 민족주의 열풍 속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드레퓌스사건에 충격을 받고, 유럽에 만연한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절망한 테오도르 헤르츨시오니즘(Zionism) 운동을 주도했고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온주의자 세계대회에서 "팔레스타인에 국제법으로 보장되는 유대인의 조국을 건설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러시아의 포그롬을 피해 이주를 원하는 유대인 난민이 영국으로 몰려오자 영국은 시오니즘의 주도자였던 테오도르 헤르츨에게 영국 식민지인 동아프리카 우간다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것을 제안했고, 1903년 바젤에서 열린 시오니즘 총회에서 이 제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고, 결국 제안은 철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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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세계대전과 영국외교의 위선


    맥마흔-후세인 서신(협약), 1915~1916

    1915년 1차 세계대전중, 영국은 고등 판무관 맥마흔을 통해 아랍 지도자 후세인 빈 알리와 서신으로 아랍의 독립을 약속하는 협정을 맺었다. 아랍의 반란을 유도해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의 패배를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사이크스-피코트 비밀협약, 1916

    맥마흔-후세인 서신이 오가는 와중에 영국은 프랑스, 러시아와 전쟁 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분할하는 비밀협정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영국은 맥마흔-후세인 협약을 지킬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밸푸어 선언, 1917

    1917년 영국 외무장관 밸푸어는 유대인 은행가이며 시오니즘 운동의 후원자인 로스차일드경에게 보낸 서신에서 "유대인들을 위한 국민의 집을 팔레스타인에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는 애매한 문구를 담았다. 전쟁 중 유대인들의 여론을 끌어오려는 목적과 정치적 이득해대한 불확신 속에 고민한 듯하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중 비슷한 시기에 진행한 위의 세 개의 협약, 선언은 영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서로 상반되는 내용이었고, 결국 아랍과 유대인에 대한 약속은 온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지역_분할안_유엔_1947
    유엔의 팔레스타인 지역 분할안, 1947

    Zero0000A/RES/181(II),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위임통치령과 유엔(UN)의 분할제안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1920

    1차 세계대전 후 창설된 국제연맹에서 1920년 영국이 요르단강 유역을 관리하는 위임통치령을 설정했다. 밸푸어 선언으로 고무된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의 이주가 가속화되었고, 유대인 이민자들과 팔레스타인 아랍인들 사이의 긴장과 충돌 또한 고조되었다.

    1920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 고등판무관에 유대인 헐버트 사무엘을 임명하며 유대인 중심적인 정책이 펼쳐졌고, 결국 누적된 불만이 터지며 1929년 아민 알후세이니가 주도하는 폭동이 일어났고, 1936년, 1937년에도 큰 반란이 발생하며 시온주의 무장조직과 아랍인들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지만 영국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홀로코스트(The Holocaust), 1941~1945

    제2차 세계대전 동안 히틀러의 나치가 주도한 홀로코스트로 약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이 비극은 유대인의 조국에 대한 시온주의 운동을 더욱 강화시켰다.

     

    UN의 팔레스타인지역 분할 제안, 1947

    1947년, 유엔은 예루살렘을 국제적인 관리하에 두고 팔레스타인지역을 유대인지역과 아랍인지역으로 분리하는 계획(유대인지역 56%, 아랍인 지역 44%, 예루살렘은 국제공동구역)을 제안했다. 양측 모두 제안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고 분할 안은 좌초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과 분쟁의 역사 2 편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 팔레스타인의 디아스포라 나크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분쟁은 역사는 영토, 정체성, 종교, 지정학의 문제 등 꽤나 다면적으로 얽혀있고, 1편에서 유대인들의 이주와 팔레스타인지역으로 귀환하는 디아스포라와 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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